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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배들의 성경통독의 자세와 방법 그리고 권면

로이드 존스는 성경읽기 자체를 매우 중요시 여겼다. 성경 읽기를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사용하였지 설교 본문을 삼기 위해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매년 성경통독을 목표로 삼았다. 설교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성경을 통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매년 한 번씩 성경을 통독하기 위해서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성자 맥체인이 개발한 성경 읽기표를 사용했다. 그는 이것을 죽는 날까지 53년간 계속 지속했다. 그가 소천한 날이 1981년 2월 28일이었는데 이날도 그는 그 표에 따라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었다. 이 본문은 ‘부활장’이다.

죠지 뮬러는 성경읽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으며, 따라서 말씀을 읽기 전과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뛰어난 선생이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성령님께서 언제나 즉각적으로 가르쳐 주시지는 않기 때문에, 어떤 구절에 대해서는 그 뜻을 보여 주시기를 거듭 간청해야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 가운데 인내로써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뜻을 가르쳐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일 일정량 읽어서 성경 전체를 체계적으로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각 성경기록의 연관 관계를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어떤 부분만을 뽑아서 읽는다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육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도 이 같은 다양성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 체계적으로 성경 전체를 통독해 나감으로써 특별히 좋아하는 어떤 견해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성경 전체의 개념을 균형 있게 파악하게 됨으로써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넷째, 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뜻들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학자들이 쓴 주석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많은 지식이나 생각을 머리에 넣어 줍니다. 그러나 기도와 묵상을 통해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때,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게 됩니다. 이 지식은 통상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며,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고,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우리의 한 부분이 되며,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경통독원 조병호 목사는 시대 순으로 성경을 재배열하여 ‘연대기순 성경읽기’ 방식으로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은 시대 순으로 단기간, 집중적으로 성경을 읽음으로써 성경의 사건들 속에서 일치성과 완결성을 더욱 명확히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힌다.

성경 읽기의 70가지 유익

(원제 : Profiting from the word)

 

성경을 읽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성경을 각 권 별로 공부할 수도 있고, 큐티를 통해서 조금씩 묵상하면서 읽어갈 수도 있고, 주제별로 공부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방식 중에 통독이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통독만이 주는 세 가지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유익은 성경의 숲을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나무를 제대로 알려면 숲을 함께 봐야 합니다. 무엇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전체를 통해서 부분을 보고, 또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봐야 합니다. 통독은 성경의 숲을 보게 함으로 성경의 각 권들을 깨닫게 해줍니다.

 

성경은 신구약은 합해서 66권입니다. 기록된 시대와 배경과 인간 저자도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 권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한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하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표면적으로는 66권이지만, 사실은 ‘한 권’입니다. 하나의 책입니다. 그래서 한 글자 한 문장에 얽매이지 않고 성경 전체를 통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 권’으로서의 성경을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유익은 성경을 역사적 흐름을 따라서 읽는 것입니다. 성경은 역사적 진공상태에서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주어진 역사적 상황과 배경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이사야가 골방에 있을 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열왕기상하라는 역사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로마서와 같은 서신서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심지어 시편도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연대기적 순서를 따라서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럴 때 ‘한 권’으로서의 성경이 말하는 큰 역사적 흐름과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메시지를 붙잡게 됩니다.

 

셋째 유익은 성경진리에 대해 균형 잡힌 시야를 갖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성경 에서 애독하는 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신서를, 어떤 사람은 예언서를, 어떤 사람은 복음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서로 연결된 ‘한 권’의 책이기 때문에 전체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경이 말씀하는 다면체적 진리에 대해서 균형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균형 있게 깨달은 진리가 삶을 바로 세우는 능력이 됩니다.  

 

성경읽기는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을 부흥케 하는 놀라운 영적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제1장. 성경과 죄

 

1.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된다.

2.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하게 된다.

3.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된다.

4. 자신의 죄를 미워하게 된다.

5. 자신의 죄를 포기하게 된다.

6. 죄에 맞서 방어진을 쌓게 된다.

7. 죄를 거스르게 된다.

 

제2장. 성경과 하나님

 

1. 하나님의 요구를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2. 하나님의 위엄에 대해 경외감을 갖게 된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게 된다.

4. 하나님의 충분하심을 신뢰하게 된다.

5.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기뻐하게 된다.

6.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하게 된다.

7.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게 된다.

 

제3장. 성경과 그리스도

 

1.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3.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에 이끌리게 된다.

4. 그리스도의 존귀하심을 알게 된다.

5. 그리스도를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다.

6.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려는 열망을 품게 된다.

7.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열망하게 된다.

 

제4장. 성경과 기도

 

1. 기도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2. 자신이 기도하는 법을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3. 기도에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4. 기도의 올바른 목적을 알게 된다.

5.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 간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6.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게 된다.

7. 기도가 참되고 큰 기쁨임을 알게 된다.

 

제5장. 성경과 선행

 

1. 선행과 믿음의 관계를 알게 된다.

2. 선행이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선행의 목적을 알게 된다.

4. 선행의 본질을 알게 된다.

5. 선행의 근원을 알게 된다.

6. 선행이 중요한 이유를 알게 된다.

7. 선행의 범위를 알게 된다.

 

제6장. 성경과 순종

 

1.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알게 된다.

2.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불순종했는지를 알게 된다.

3.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된다.

4.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게 된다.

5.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게 된다.

6. 말씀에 순종케 하는 은혜를 간구하게 된다.

7. 순종의 보상을 현세에서도 누리게 된다.

 

제7장. 성경과 세상

 

1. 세상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된다.

2. 세상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적임을 알게 된다.

3. 세상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4. 우리의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5. 세상과 구별된 길을 걷게 된다.

6. 세상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7. 세상을 초월하게 된다.

 

제8장. 성경과 약속

 

1. 성경의 약속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게 된다.

2.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을 알고자 애쓰게 된다.

3. 하나님의 약속이 갖는 축복의 범위를 알게 된다.

4. 하나님의 약속들을 올바로 구별하게 된다.

5.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버팀목이 되게 한다.

6.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인내하며 기다리게 된다.

7. 하나님의 약속들을 정당하게 이용하게 된다.

 

제9장. 성경과 기쁨

 

1. 기뻐하는 삶이 우리의 의무임을 알게 된다.

2. 참된 기쁨의 비밀을 알게 된다.

3. 기쁨의 가치를 알게 된다.

4. 기쁨의 근원에 참여하게 된다.

5. 기쁨을 유지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다.

6. 기쁨을 가로막는 것들을 피하게 된다.

7. 슬픔과 기쁨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제10장. 성경과 사랑

 

1. 사랑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2. 왜곡된 사랑을 간파하게 된다.

3. 사랑의 본질을 알게 된다.

4. 사랑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알게 된다.

5. 올바른 양식으로 사랑하게 된다.

6. 사랑의 다양한 방식들을 배우게 된다.

7. 사랑을 계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영어성경 읽기의 유익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일반 책 가운데 한 권이 아니라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배움으로 로마서 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처럼 믿음이 자라나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원래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와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읽고 생명을 얻도록 자국어로 번역해야 되는 것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며, 성경을 통하여 믿음을 가지게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는 분명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번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번역도 번역자의 사상과 주관적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중요한 원칙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원문의 문법형식을 번역문에서도 그대로 반영시키는 형식일치(formal equivalence)의 번역이 있고, 하나는 원문의 뜻을 옮기는 내용일치(dynamic equivalence)의 번역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쓰는 표현으로 바꾸면 직역을 하느냐, 아니면 의역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직역은 원문을 그대로 전달하는 장점은 있으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역은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만 번역자의 신학적 이해와 신앙관에 따라 원문과 달리 해석되어 전달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의미를 전달하는 번역이 일반적인 추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우리 한국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영어성경 가운데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을 예를 들 수 있는데, 이 성경은 케네스 테일러라는 목사님이 자신의 자녀들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을 풀어서 번역한 것입니다. 이 리빙 바이블은 우리나라에서 "현대인의 성경"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은 영어가 모든 학문, 문화, 사상, 생활 등이 세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는 일반인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영어성경 한 두 권 정도는 구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성경은 각각의 번역자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이해와 관점에 따라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수적인 번역에서는 이사야 7:14에 '처녀'를 virgin으로 번역하였는가 하면, 자유주의적인 번역에는 young woman으로 번역하여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번역성경의 이러한 위험성을 배제하고 적절하게 분별하며 영어성경을 공부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유익은 성경의 의미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두 주 전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 7시 20분부터 대전극동방송국 신중혜 PD님이 진행하는 <좋은 아침입니다> 중에 중부대학교 장인식 교수님과 함께 진행하는 <영어 QT>는 영어성경을 공부하는 유익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좋은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두 번의 방송을 다 들었는데 목회자요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 내용을 들었을 때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6:1에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본문을 The New Living Translation에서 "자녀들이여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해있기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Children, obey your parents because you belong to the Lord)라고 번역하였고, The Amplified Bible에서는 "자녀들이여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생각하며 순종하십시오"(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as His representatives)라고 번역된 것을 소개함으로 헬라어 성경에서 '주 안에서'의 개념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속한 자의 당연한 의무로, 또 한편으로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은 의미로 설명함으로 이 의미를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도 The New Living Translation에서 "하나님은 그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God blesses those who realize their need for Him)로 번역된 것과, New Century Version에서 "영적으로 매우 간절하게 갈망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Those people who know they have great spiritual needs are happy)로 번역된 것을 소개함으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영적으로 매우 갈급해 하는 사람'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영어번역과 대조하여 읽는 일은 원어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고 말씀의 의미를 풍성하게 이해함으로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고 믿음생활에 큰 진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성경을 읽을 때 믿음이 자라고 풍성해지는 것과 더불어 부차적인 유익도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를 배울 수 있기도 하고, 많은 영어원서를 읽고 해석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 친구 교수 가운데 군대시절에 영어성경을 여러 번 읽었는데 그것은 어떤 영어원서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어성경을 함께 서로 비교하여 읽음으로 성경의 의미를 다양하면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영어도 배워서 외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도 되기를 희망합니다.

 

 

성경읽기 모임에서 유익되는 기사는 모든 성경은 유익하다는 전제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것을 지도하는 요인의 하나가 그 사실을 참조하기 위해서 처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하나로 모인 “장과 절 사람들”이 취한 성경읽기 형식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러한 주중의 집회들에서 유익을 얻기 위해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까?

 

The Profit is in the Preparation

The topic of preparation for the reading has already been addressed. However, we must touch on it again briefly because your preparation may be the singularly most important factor in your profiting from the reading. You would not be surprised at our saying that one must prepare if he is going to lead the reading. Nor would you be surprised if we said that one must prepare if he is going to participate. Surely the believers who have come deserve something better than "fast food!" But does it surprise you that we are suggesting that you prepare for your role as a listener in the reading? You should read the epistle that is being studied a number of times before the assembly embarks on that particular book. In fact, G. Campbell Morgan said that he never spoke on anything that he had not read at least twenty-five times! What a foundation for feeding one’s own soul and the souls of others! In your reading you should also consult a trusted commentary so as to moderate your own thoughts on the passage. Use, but do not abuse, written ministry. The abuse is in taking someone else’s thoughts without having developed your own, alone and in dependence on God. In your preparation be sure to prepare your questions. Write them out.

 Charles Spurgeon said that "reading makes a full man; writing makes an exact man." You can contribute to the teaching by preparing your questions. This preparing to listen will pay huge dividends in your soul as you feed upon the Scriptures in the days before the reading. Additionally, you will get so much more from the actual reading when you can listen intelligently to the discussion. The writer of the Hebrew treatise recognized the problem of readers who were not proficient in the precepts of Scripture. As he was beginning his dissertation on the typology in the priesthood of Melchisedec he was not able to expound all he would have desired due to their lack of spiritual growth. The time you spend in preparation for learning will indeed train your powers of discernment.

 

유익은 준비에 있습니다

읽기를 위한 준비의 논제는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한번 간단하게 다루겠습니다. 왜냐하면 읽기모임 준비는 당신에게 유익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가 읽기를 지도하기 위하여 가는 경우 한가지 준비해야 한다고 우리가 말한 경우에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가 참가하기 위하여 가는 경우에 한가지 준비해야 한다고 우리가 말한 경우에 놀랄 것입니다. 확실하게 믿는 자들은 무언가 “즉석 음식!” 보다 더 좋은 가치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제안으로 놀랍니까? 그것은 읽기에서 청취자로 당신의 역할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모임이 특정한 책으로 시작하기 전에 다수 시간 공부되고 있는 그 서신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G. 캠벨 몰간은 적어도 스물 다섯 번을 최소한 읽지 아니하면 어느 것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자신의 영혼과 다른 사람의 영혼을 먹이는 기초인가! 당신의 읽기에서 당신은 또한 단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주석서를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용하되 글을 쓰는 사역에는 남용하지 마세요. 남용은 혼자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의존에서 자신의 성장이 없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어떤 사람이 취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준비에는 질문들을 확실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기록하십시오.

찰스 스펄젼은 말하기를 "읽기는 충만한 사람을 만들고 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당신은 가르침을 위해 당신의 질문을 준비해서 기여할 수 있습니다. 듣는 것을 준비하는 이것은 당신이 읽기 하는 날 이전에 성경에서 당신의 영혼에 부양함으로 막대한 유익을 받을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교제들에서 지적으로 들을 수 있을 경우 실제적인 읽기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논문의 작가는 성경의 교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의 문제를 인식했습니다. 그가 상세하게 설명할 수 없어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에 있는 상징으로 그의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영적인 성장의 결핍 때문에 당연히 원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배우기 위한 준비로 소요하는 시간은 당신의 안목의 능력을 참으로 훈련할 것입니다.

 

Profit is in the Pedagogy

Those leading the reading will remember that the primary purpose of the local assembly Bible reading is to teach the Scriptures. It is not story time! It is the time for the confidence that Paul felt when he said, "I commend you to God and to the Word of His grace" (Acts 20: 32). This was all they had. This was all they needed. We trust that those responsible are gifted of God and graced with diligence in their study habits. While the reading is not one-man ministry, it is not a "free-for-all." The Risen Head, Christ, has graciously given to the Church the permanent gifts of the pastor-teachers or teaching pastors.

 

이익은 교육(가르침)에 있습니다

읽기모임을 지도하는 것은 주된 목적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역모임의 성경읽기는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야기 시간이 아닙니다! 확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바울은 그가 말했을 때 느낍니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행 20:32). 이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두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필요한 모두이었습니다. 우리는 신뢰합니다. 그 책임감은 하나님의 은사들과 그들의 공부 습관에 있는 부지런함으로 부여되었습니다. 읽기하는 동안 한 사람이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참가해서 인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한 머리, 그리스도께서는 목자의 은사 또는 교사의 은사들 영원한 은사를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Secondly, we should respond to the gifts. Thirdly, we should reflect the gifts. Think of Bible teachers in the assemblies of God that you would most want to emulate. What were their study habits as young believers? What are their present patterns of meditation on the Scriptures? Are they, or were they, casual readers of the Bible or did they labor to the point of weariness in the Word? The lack of expository teaching among us is a result of a lack of expository studying. We cannot give what we do not have! May we encourage you to be like the Preacher? Solomon said, "Moreover, because the Preacher was wise, he still taught the people knowledge; yea, he gave good heed, and sought out, and set in order many proverbs. The preacher sought to find out acceptable words: and that which was written was upright, even words of truth. The words of the wise are as goads, and as nails fastened by the masters of assemblies, which are given from one shepherd" (Eccl 12:9-11). He was prudent. It is interesting also that he persevered. He pondered; he pursued; and he presented. Do you see a void in the local church in the area of expository teaching? Will you apply yourself to the Word now so that you may, in due time, contribute to the solution and not to the problem?

 

이차적으로, 우리는 은사들에 반응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우리는 은사들을 반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임들에 있는 성경 교사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은 최대한 모방하고 싶을 것입니다. 젊은 믿는 자로서 그들의 공부 습관은 어떠했습니까? 성경에 대한 묵상의 오늘날 그들의 본은 무엇입니까? 그들입니까 또는 그들이었습니까, 성경의 건성으로 읽는 자입니까 또는 그들이 말씀에 있는 요점에 대해 지치도록 수고한 것입니까? 우리 중에서 가르침의 해설적인 결핍은 해설적인 공부가 결핍한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무엇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전도자 같이 되도록 격려해도 좋습니까?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로우므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참으로 그가 크게 주의를 기울이고 탐구하여 많은 잠언을 정리하였노라 전도자는 애를 써서 받아들일 만한 말씀들을 찾았는데 여기 기록된 것은 올바른 것이요 곧 진리의 말씀들이로다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들은 가시 채들 같고 집회의 스승들이 굳게 박은 못들 같나니 이것들은 한 목자께서 주신 것이니라”(전 12:9-11). 그는 신중했습니다. 또한 흥미있는 것은 그가 인내한 것입니다. 그는 숙고했습니다; 그는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타냈습니다. 당신은 지역 교회에 가르침의 영역에 있는 빈 공간을 봅니까? 그렇다면 지금 말씀으로 당신 자신에 적용하고 당신은 할 수 있으며 때가 되면 해결책과 부족한 문제에 대해 기여하지 않겠습니까?

 

Profit is in the Passion

In the assembly reading we do not all profit alike. A factor determining our degree of profiting is our passion for the Word. The disciples on the Emmaus Road profited when the Teacher began "at Moses and all the prophets, and expounded unto them in all the Scriptures the things concerning Himself (Luke 24:27). They "said one to another, Did not our heart burn within us, while He talked with us by the way, and while He opened to us the Scriptures?" (Luke 24:32).

Mary profited when she "also, having sat down at the feet of Jesus was listening to His word" (JND). Mary profited personally because of her passion.

 

유익은 열정에 있습니다

읽기 모임에서 우리는 한결같이 모두에게 유익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유익의 정도를 결정하는 요인은 말씀에 관한 우리의 열정입니다. 엠마오 길에 두 제자는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는 가르침을 시작했을 때 유익이 되었습니다(눅 24:27). 그들은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마리아는 그녀가 “단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을” 때 유익을 얻었습니다(JND). 마리아는 그녀의 열정 때문에 개인적으로 유익을 얻었습니다.

 

Profit is in the Post-Meeting Perusal

What do you do when you go home from the meeting? A valuable exercise would be to conduct a post-meeting analysis by reading the passage again. Are there additional insights? Were there major things left out? Did you get to the essence of the chapter? Check another commentary on the passage to gather additional perspectives. You will grow in your appreciation for the inexhaustible Word. This review will reinforce the truths you have learned.

 

유익은 집회의 기록 묵상에 있습니다

당신은 집회에서 당신의 집으로 갔을 때 무엇을 합니까? 귀중한 연습은 단락을 다시 읽어서 집회의 기록을 검토하며 실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추가적인 깨달음이 있습니까?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이 있었습니까? 장의 핵심에 대해 이해했습니까? 추가적인 관점을 모으기 위하여 단락에 다른 주석도 확인하십시오. 당신은 무궁무진한 말씀에 관한 당신의 올바른 인식에서 성장해 갈 것입니다. 이 검토는 당신이 배운 진리를 더욱 굳게 할 것입니다.

 

Profit is in the Participation

A sage has said, "Every student is a teacher and every teacher is a student." We see evidence of this adage in the assembly readings. Often the question of a younger person, honestly asked, and arising out of a thoughtful heart, will provoke a line of thinking and generate an elucidation of the Scriptures that will truly edify the saints. Do you feel too young to help? Remember that the Teacher said, "Yea; have ye never read, Out of the mouth of babes and sucklings Thou hast perfected praise?" (Matt 21:16). Teaching should not be confused with telling! True teaching takes place when there is an interacting of minds. Remember that there will be others in the meeting with questions but who are reticent to ask. Sincere questions are indeed invaluable to a reading. And your participation need not always be by way of questions. The one leading the reading should be careful not to present himself as a fountain of wisdom only, but as a facilitator who encourages others and thus contributes to their development.

 

유익은 참여함에 있습니다

현자는 말했습니다, “모든 학생은 선생이고 모든 선생은 학생이다.” 우리는 읽기 모임에서 이 격언의 증거를 봅니다. 종종 젊은 사람의 질문에, 정직하게 묻고, 신중한 마음이 일어남은 생각의 진로를 자극할 것이며, 그리고 성경의 해설을 가져와 참으로 성도들의 덕을 끼칠 것입니다. 당신은 돕기에는 너무 젊다고 느낍니까? 다음의 말씀하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 주께서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을 완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적이 없느냐?”(마 21:16). 가르침과 말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마음의 상호 교통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집회에서 질문을 가진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누군가 묻도록 과묵합니다. 근실한 질문은 참으로 읽기에서 값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참여의 필요는 항상 질문의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읽기를 지도하는 한가지는 단지 지혜의 원천으로, 자기를 나타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는 조력자로서 그리고 그들의 성장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The Profit is in the Practice

There is a possibility that we may treat the reading as an academic exercise. This is a great peril. We must be intelligent in reading but we must remember that the Bible was not written to feed our intellects. The Lord Jesus said, "My sheep hear My voice, and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John 10:27). James, the practical preacher, said, "But be ye doers of the Word, and not hearers only, deceiving your own selves. For if any be a hearer of the Word, and not a doer, he is like unto a man beholding his natural face in a glass; For he beholdeth himself, and goeth his way, and straightway forgetteth what manner of man he was. But whoso looketh into the perfect law of liberty, and continueth therein, he being not a forgetful hearer, but a doer of the work, this man shall be blessed in his deed" (Jas 1:22-25). Notice that he ponders and practices. The power to practice comes from the pondering. Loving the Word implies being led by the Word!

 

유익은 습관에 있습니다

우리가 학술적인 훈련으로 읽기를 다룰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위험입니다. 우리는 읽기에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지성을 높이기 위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실제적인 설교자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너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울로 자기의 본래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같으니라 그는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 길로 가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곧 잊어버리거니와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그 일을 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일에서 복을 받으리라”(약 1:22-25). 그가 숙고하고 실행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실행하는 힘은 묵상에서 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말씀에 의한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성경 읽기를 통해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보물을 발견하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많은 선택이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께 머리 숙여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을 통찰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확고한 소망은 없다. 하지만 매일 매일 성경을 읽겠다고 다짐을 해도 막상 지키기는 어렵다. 인생의 여정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려면 진정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순종하기를 열망해야한다. 지혜로운 마리아는 마르다의 못마땅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발 앞에 조용히 앉기를 선택했다. 식사준비를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엿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기를 갈망했다. 다른 이들이 우선시하는 의무를 소홀히 했으나 아무것도 예수님의 발 앞에 앉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본서는 우리가 말씀을 읽어야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말씀을 읽고 싶다는 열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매일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을 삶 속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성령을 맞이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당신의 순종을 통해 역사하셔서 당신의 행위, 태도, 성향, 우선순위들, 즉 삶 전체를 변화시키실 것이다.

 

 

스펄전의 본문 선택과 성경 읽기

 

런던 남서쪽 웨스트 노우드 공동묘지(West Norwood Cemetery)에 자리한 스펄전의 묘비에는 “그의 주님이요,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찰스 스펄전, 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묘비명 위로 독특하게도 돌로 만들어진 성경책이 마치 그의 삶을 상징하듯, 양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모든 설교자가 그러하듯, 스펄전은 성경을 사랑했고, 그것을 자신의 목회와 설교의 유일한 근원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스펄전은 성경을 어떠한 방식으로 읽었으며, 매주 설교를 위한 본문을 어떻게 선택했을까?

본문 선택이 설교의 승패를 좌우한다

매주 주일이 다가오면 주일 설교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맨 처음 고민하는 문제 중 한 가지는 주일 강단에서 전해야 할 설교 주제와 본문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설교 본문 선택은 종종 많은 설교학 강의나 설교학 책에서 소홀히 다루어지는 영역 중 한 가지다. 본문 선택은 으레 설교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의 선택은 어떤 의미에서 설교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본문은 설교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영적으로 배고프고 허기진 저녁 만찬의 손님들에게 어떤 요리를 내어놓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과도 같다.

스펄전이 말하듯, 때때로 하나님은 찬송이나 기도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성도에게 영적 유익을 끼치기도 하신다. 따라서 찬송의 선택과 기도 내용의 선택은 중요한 문제다. 하물며 설교 본문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많은 설교자들이 본문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적용하고, 전달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달리 설교 본문의 선택에 있어서는 동일한 노력과 충분한 숙고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요리실력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스펄전은 설교 준비에서 본문과 주제의 선택에 어떤 설교자보다 큰 의미를 부여했다. 스펄전은 말한다.

“고백하건데, 저는 자주 여러 시간 동안 앉아서 기도하며 설교의 주제를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 연구의 주요 부분입니다.… 마치 사진사의 렌즈 앞에서 이런저런 이미지들이 계속 지나가듯이 설교의 주제들이 제 머리에서 하나씩 지나갑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확 끌리는 것이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은 제게 별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1

따라서 본문의 선택이란 스펄전에게 설교 준비에 있어서 맨 처음 고민해야 하는 큰 과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고민은 설교할 본문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정원에 수만 가지의 아름다운 꽃들 가운데서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고백하건대, 저는 아직도 본문을 선택하는 일에 참으로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진리들이 모두 시급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고 모든 의무들이 새롭게 강조되고 심어주어야 할 것들이며, 교인들의 수많은 영적인 필요들이 전부 공급을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펄전의 본문에 대한 고민은 그의 교회와 회중에게 보다 적절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고민이었다. “비록 모든 성경이 좋고 유익하지만 모든 본문이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이 시기에 적절한 것이 더 낫습니다.… 많은 보석들 중에서 우리는 현재의 정황에 가장 알맞은 보석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1. 본문 선택의 기본 원리: 성령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스펄전은 설교자가 1, 2년의 긴 주일설교문을 가지고 단순히 그것들을 순서를 따라 반복해서 설교하거나 혹은 몇 편의 케케묵은 설교를 그저 순서대로 읽어내려 가는 것을 정죄했다. 스펄전에 따르면 이러한 방법은 “영적 게으름을 조장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스펄전은 어떠한 방법으로 주일날 설교할 본문을 찾았는가?

무엇보다도 스펄전은 설교할 본문을 얻기 위해서 설교자의 무릎을 강조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만일 제게 ‘가장 적합한 본문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께 그것을 달라고 부르짖으십시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며, 회중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들에게 하늘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이는 설교자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 양식에 대한 선택 역시 그 분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것이 성경적이며, 현명한 자세다. 스펄전은 설교 본문의 선택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믿는 설교자들을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의 사도신경에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조항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실제로 믿고 행동에 옮기는 예가 드문 것 같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자기들이’ 본문을 선택하고 ‘자기들이’ 그 가르침을 전달하고 ‘자기들이’ 거기에서 내용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2 반면, 이와 달리 경건한 설교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열망한다. “경건한 설교자는 본문을 선택하는 일을 오류가 가득한 자신의 생각에 맡기지 않고 하나님의 전지하신 성령께 의지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그분의 손에 겸손히 내어 놓고 성령께 강림하셔서 정해진 때를 위하여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의 양식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어떠한 순간에도 성령께서 자신에게 설교 본문을 주실 것임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예배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라도 그 말씀 얻기를 기다립시다. 우리처럼 즉각적인 감동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차갑고 계산적인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마는 이런 것들은 우리가 감히 거스릴 수 없는 하나의 마음의 법칙입니다. 권능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2. 적절한 본문을 찾는 실제적인 원리

그렇다면 적절한 본문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스펄전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한 구절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거기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면 설교의 주제를 달리 더 찾아 볼 필요가 없습니다. … 어느 본문이 여러분을 사로잡게 되면 적절한 본문을 찾았다고 확신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 그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러한 본문들을 찾을 수 있는가? 스펄전에 따르면 가장 적합한 본문을 구하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겸손히 구하는 것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우리의 설교 주제에 관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또한 그 분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간구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하여 스스로 손쉽게 주제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우쭐해진다면, 주제를 선정하는 문제에서조차도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그가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씀을 받으십시오.”3

기도를 통하여 확신 가운데 주어진 본문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기도의 응답으로 설교 본문이 주어지게 되면 그 본문이 정말로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똑같이 그저 무미건조한 형식적인 설교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향기와 기름부으심이 거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스펄전은 설교자에게 기도를 드린 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도하심을 위해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고 생각들을 집중시키라고 권면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려할 것인가?

첫째, 교회와 회중의 영적인 상태와 필요를 고려한다. 여기에서 경계할 것은 특정 회중에 관한 지나친 관심이다. 스펄전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헌금을 많이 내는 교인들만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가난한 교인에 관해서도 동일한 관심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한다. 또한 설교자는 회중의 칭찬을 의식하여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우리는 신실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청중들이 요구하는 그런 곡조를 연주해 주는 악사(樂士)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교인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시고 그것을 말씀의 주제로 삼으십시오.”

둘째, 교회에서 번지고 있는 죄들이 무엇인지 숙고한다. 교인들의 세속적 생활, 탐심, 기도 없음, 분노, 교만, 형제 사랑의 결핍, 비방 등 현재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야 하며 그러한 문제에 합당한 말씀을 설교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교인들의 영적상태를 살피고 이단이나 악한 생각들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다면 그것들을 교정할 수 있는 본문을 설교본문으로 정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신중한 목자는 자신의 양떼들을 자주 점검하여 그들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합니다. 어떤 종류의 음식은 조금씩만 주고 어떤 종류의 음식은 풍성하게 공급하고 적절한 약을 투여하는 등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셋째, 그 전에 다룬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핀다. 이전에 행한 설교의 주제들을 검토하여 혹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교리가 없었는지 살피는 것은 유익하다. 또한 그것의 내용에 있어서 지나치게 교리만 강조하지 않았는지 혹은 실천적인 것에만 신경을 썼는지 혹은 체험만을 강조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성경의 각 책들과 다양한 주제들을 설교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 “진리라는 초상화를 그 특색에 맞추어 균형 있게 다양한 색깔로 그리도록 힘써야 한다.”

3. 본문 선택의 결정적 원리: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즉각 순종하라

그러나 비록 이러한 원리로 본문이 선정되었을지라도 만약 성령의 또 다른 인도하심이 있다면 설교자는 그것에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잘 준비해놓은 설교를 취소하고 성령의 즉각적인 도우심에 의지하여 순전히 즉석 설교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법입니다.” 이는 스펄전의 설교 사역 초기부터 일관된 원리다. 스펄전은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경험을 들려주는데 그중 뉴파크스트리트교회에서의 경험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어느 주일 저녁예배 시간. 스펄전은 설교 준비를 아주 착실해 잘해 놓았고, 찬송을 부르며 본문을 찾아놓으려 성경을 폈다. 그러나 그 순간, 마치 사자가 수풀에서 달려 나오듯, 그 반대 쪽 페이지의 다른 성경 구절이 그의 눈에 강하게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본문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스펄전은 우왕좌왕하며 머뭇거렸지만 성령께서 강하게 그 마음을 이끄셔서 준비한 본문을 힘들게 포기하고 새로운 본문으로 즉흥적으로 설교하게 되었다. 스펄전은 즉석에서 첫 번째 대지와 두 번째 대지를 진행시켰지만, 세 번째 대지에서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예배당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예배당의 실내등이 갑자기 꺼져버려 교회가 일시에 캄캄한 암흑 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스펄전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신 말씀을 따라 세 번째 대지를 설교했다. 스펄전은 원래 준비된 설교 본문과 원고를 따라 세밀히 설교를 진행하고 있었다면 설교가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었음을 토로했다. 예배가 끝나고 몇 가지 모임이 있은 후 두 사람이 스펄전을 찾아와 그날 밤 자신들이 회심했다고 고백했다. 한 사람은 설교의 전반부에서, 한 사람은 갑자기 등이 꺼진 후 듣게 된 새로운 말씀을 통하여 회심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스펄전은 설교의 본문 선택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확신했고 그것에 철저하게 복종하려고 노력했다. 스펄전은 이에 관하여 이렇게 변호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어리석다고 조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혹 이런 것을 책망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기쁩니다. 여러분, 설교에서 무엇보다도 피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실질적으로 무시해버리는 기계적인 설교 행위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저마다 목회사역에 가운데서 그런 일들을 체험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을 주시하십시오.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에 여러분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러나 스펄전의 성령의 의존성이 설교자의 설교 준비의 소홀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펄전은 설교 준비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설교를 앞둔 한두 시간쯤 전에 하늘의 사자가 설교의 본문을 저절로 전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설교자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요, 그로 인해 본문 없는 강단을 경험할 것임을 경고한다. 오히려 설교자는 설교를 위하여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설교 준비가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 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꿀을 만드느라 바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언제나 교인들을 위하여 영적인 꿀을 저장하는 데에 바빠야 할 것입니다. 설교 사역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목회사역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 목사들은 항상 건초를 만드는 작업에 힘써야 하고, 특히 태양이 떠 있는 동안에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준비하는 데도 성경본문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경우 스펄전은 성경을 계속해서 읽되, 특별히 한 장을 읽고 각 절마다 깊이 묵상하거나 혹은 한 절을 선택하여 그 구절에 온 정신을 쏟을 것을 권면한다. “그렇게 하면 그렇게 읽는 절이나 장에서 본문을 찾을 수 없다 할지라도 거룩한 주제에 정신을 적극적으로 쏟는 동안 적절한 말씀이 떠오를 것입니다 생각들이 서로 연결되어 가다가 결국 긴 생각의 흐름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가 예정된 설교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성경 읽기의 원리

설교주제와 본문의 선택이 일단 끝나면 설교자에게 남겨진 다음 과제는 성경 읽기의 문제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요리를 결정한 후, 재료들을 다듬고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설교의 실제적인 출발점이라는 면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1. 기본 원리: 성경 자체를 읽고 성경으로 목욕하라

스펄전은 당대의 설교를 논하며, 오래전 설교의 선진들의 설교에 비하여 설교에 성경이 지나치게 적게 나타나고 있음을 한탄하곤 했다. “신학의 대가였던 청교도 설교자들의 설교와 비교해보면 오늘날의 설교에는 성경이 지나치게 적게 나타나 있습니다. 청교도 설교자들이 사용한 거의 모든 문장은 성경 말씀에 빛을 던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설교하는 말씀뿐 아니라 설교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말씀이 새로운 조명 아래 놓입니다. 그들은 본문 말씀과 연결되는 다른 구절들로부터 놀라운 빛을 이끌어 내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독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것을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도록 교육시켰던 것입니다.” 따라서 스펄전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읽을 때에 주석서나 다른 어떤 참고자료들보다 성경 자체를 많이 읽을 것을 권했다. “물탱크에서 마시는 것보다는 샘에서 마시는 것이 언제나 제일 좋습니다. 주석서들보다는 성경 자체를 여러분 스스로 읽는 것이 은총 가운데서 자라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순수한 우유를 마십시오. 반면에 인간의 말인 찌꺼기 우유나 물은 마시지 마십시오.”

이러한 성경 읽기는 주석서나 다른 것을 먼저 대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설교자의 편견을 제어할 뿐 아니라 위로부터 주신 말씀 자체에 귀 기울이며, 설교자의 마음을 그것으로 가득 채우는 데 기여한다. 또한 그것은 설교가 철저하게 본문 자체에 깊이 뿌리내리게 함으로 설교자의 생각이 아닌 계시의 본문이 설교 속에 흘러넘치도록 돕는다. 스펄전은 말한다. “언제나 스스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제가 성경 본문 속에 누워서 그것으로 흠뻑 젖어 있을 때에 가장 좋은 설교를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 저는 그 본문으로 목욕을 한 후에 그 속에 누워서 그 본문에 저를 흠뻑 적시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본문이 저를 부드럽게도 하고 견고하게도 하고, 여하튼 그 본문이 제게 해야 할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야 그 본문에 대해 설교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본문의 정신이 여러분을 가득 채우게 되면 어떤 특정한 단어나 문구의 미세한 의미에 대해 개의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향기에 흠뻑 젖어 드십시오. 그러면 그 향기가 여러분에게 풍겨나게 될 것이고 사방으로 퍼져가게 될 것입니다.”4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성경에 어떻게 잠겨야 하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2. 성경 읽기의 구체적인 원리

1) 의미를 파악하라

스펄전에 따르면 성경 읽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의 파악이다. 만약 전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읽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스펄전은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단지 성경을 몇 장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선한 행동을 했다고 위안 삼는 것을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스펄전은 말한다. “의미 파악이 올바른 성경읽기의 본질입니다. … 이것이 없다면 읽는 것이란 하나의 기계적 운동에 불과하고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따라서 스펄전에게 한 사람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통독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이 읽은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읽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펄전은 하루에 성경의 여러 장들을 읽기보다는 짧은 몇 구절의 정독과 깊은 이해를 권한다.

2) 열린 마음으로 깨어있으라

지금까지 세상의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눌려있던 사람이 성경을 펴자마자 하늘나라의 신비로 들어갈 수는 없다. 하늘의 양식을 먹기 원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며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각성시키시기를 겸손히 기도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여러분이 성경의 영원한 빛을 감히 보기 전에 먼저 여러분의 눈을 열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거룩한 사역 전에 제사장들이 큰 놋대야에서 발을 씻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여러분의 영혼의 눈을 씻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영혼아, 오라, 깨어나라. 지금 너는 신문을 읽는 것이 아니다. 또 현혹시키는 인간의 시를 음미하려는 것도 아니다. 궁전에서 왕관을 쓴 왕처럼 말씀 속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로 너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일어나라, 나의 영광아, 일어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 내 영혼아, 분발하라. 나는 지금 나로 하여금 그것들을 지키도록 말씀하시는 성경을 묵상하려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헌신의 행위이다. 내 영혼아, 분발하라.’”

3) 읽은 후에는 묵상하라

스펄전에 따르면 성경을 읽는 것은 밀을 거둬들이는 것이며, 묵상하는 것은 밀을 타작하여 방아를 찧어서 빵을 만드는 것과 같다. 또한 성경을 읽는 것이 소가 풀을 뜯는 것이라면 묵상은 말씀을 소화시키며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5 이러한 묵상의 필요는 성경이 가진 독특성 때문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성경책들은 우리가 생각하도록 만들어지고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중 이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가르치십니다. 즉 우리로 생각게 하여 신령한 것들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성경의 묵상은 진리의 말씀으로 설교자를 단련시키고 영혼을 더욱 강건하게 세워준다. 따라서 성경을 읽은 후 그것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묵상해야 합니다. 짓밟기 전에는 이 포도송이들은 포도주를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기름이 흘러 나오도록 이 올리브들을 바퀴 아래에 놓고 여러 번 눌러야 합니다.”

4) 기도하라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한 또 다른 스펄전의 강조는 기도에 있다. 그것은 성경해석에서 결정적인 요소다. 스펄전은 말한다. “나는 본문의 의미는 다른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해서 가장 잘 해석될 수 있음을 항상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단어의 문자적 의미나 혹은 단어들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사전이나 주석을 의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끝났을 때조차, 가장 큰 도움은 기도로부터 온다는 것을 또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6 성경 해석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묵상처럼 성경이 가진 독특성에 기인한다. 곧 모든 책이 그러하듯, 그 책의 의도와 의미를 가장 잘 아는 이는 그 책의 저자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 저자에게 묻는 것이다. “누가 책을 제일 잘 이해합니까? 그 책의 저자입니다. … 우리가 성경을 들고 읽으며 또 그 뜻을 알기 원할 때는 그 뜻을 드러내시도록 성령께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떠한 방식으로 설교자가 본문의 이해에 이르게 하는가? 스펄전은 말한다. “성령께서는 기적을 행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또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셔서 그 자연적인 연관성에 의해 그것을 하나씩 소화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령의 가르침의 진수와 골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울타리와 개천을 지나 그리스도께로

스펄전에 따르면 참된 성경 읽기란 본문의 의미의 파악을 넘어 그것의 영적 의미를 찾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구약의 율법서나 역사서를 다룰 때도 예외가 아니다. 스펄전은 말한다. “구약의 율법 중에 내적인 감각과 의미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레위기에 등을 돌리지 마십시오. … 레위기나 솔로몬의 노래와 같은 그러한 경우에도 단단히 잠겨 있는 귀하고 정선된 하나님 말씀의 교리가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읽을 뿐만 아니라 조사하십시오. 영적인 의미에 도달하기까지는 의식적인 교훈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참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예수님을 의식하며 예수님을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교리나 율법보다도 더 크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마 12:6). 스펄전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하거나 느끼지 못한 채 성경을 읽는다면 우리가 비록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통독한다 할지라도 성경은 죽은 책이 될 것이며, 우리의 영혼 역시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성경 읽기는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가르침에서 그것을 성취하신 주님께로, 율법에서 그것을 높이신 주님께로, 죄에서 나를 위해 그것을 지신 주님께로, 언약에서 그것의 “예와 아멘”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 나는 성경을 그분의 임재 속에서 읽겠습니다. 주님은 성경의 본질이시며, 이 책의 저자일 뿐 아니라 이 책의 증거시며, 창조자시며 그 전부임을 의식하며 성경을 읽겠습니다.”7

그러므로 스펄전에게 올바른 성경읽기란 모든 본문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스펄전은 이를 힘주어 이렇게 강조한다. “여러분이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한다면 성경은 여러분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추구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스펄전의 성경 읽기는 왜 그의 모든 설교 ― 구약을 본문으로 설교한다 할지라도 ― 가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인지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설교자의 모든 설교가 궁극적으로 왜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스펄전은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는 당시의 많은 설교자들의 설교에 관하여 이렇게 경고했다. “어떤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보혈에 관하여 설교할 수 없거나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런 설교자들에 관하여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한마디는, 결코 그런 설교를 들으러 가지 마십시오! 결코 그런 설교를 듣지 마십시오! 입니다. 그 안에 보혈이 없는 사역은 죽은 것이요, 죽은 사역은 어느 누구에게도 유익이 없습니다.”8

그렇다면 본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펄전은 이에 관하여 설교에서 그리스도를 전혀 말하지 않았던 한 젊은 설교자에게 말했던 웨일즈의 노설교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은 아직 설교하는 법을 모르고 있소. 그곳이 어디 있든지 간에 영국의 작은 모든 마을로부터 런던으로 가는 길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모든 책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께로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설교법이란 내가 이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로 도달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과 그러한 방법으로 일관하여 설교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젊은 설교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르는 길이 없는 책을 내가 찾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 노설교자는 “나는 40년 동안 설교를 해왔어요. 그러나 그러한 성경을 결코 찾아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만약이라도 그러한 본문이 있다면 울타리와 개천을 건너 나의 주님께 이를 때까지 그 길 찾기를 멈추지 않겠소.”

스펄전은 성경을 일생토록 한결같이 사랑했다. 그것은 그에게 언제나 닳지 않는 책이었고, 새로운 책이었고, 새로운 성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리스도와의 깊은 밀회 가운데로 인도하는 감미로운 책이었다. 깊어가는 가을, 한 책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에 빠지자. 그 깊은 사랑에 잠겨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그의 백성을 먹이는 자, 하늘의 기쁨이 되리라.

 

주)

1. C. H. Spurgeon, Lectures to My Students: Completed & Unabridged (Grand Rapids: Zondervan, 1954), 84~5.

2. Spurgeon, 앞의 책, 85.

3. Spurgeon, 앞의 책, 96.

4. Spurgeon, An All-Round Ministry (Edinburgh: Banner of Truth, 1900), 124~125.

5. Spurgeon, MTP Vol. LVII (London: Passmore & Alabaster, n.d.), 611.

6. Spurgeon, MTP Vol. LVII (London: Passmore & Alabaster, 1910), 5.

7. Spurgeon, MTP Vol. XXV (London: Passmore & Alabaster, 1886), 829.

8. Spurgeon, MTP Vol. LIV (London: Passmore & Alabaster, 1908), 405.

손동식 | 2010. 10.

 

 

성경읽기와 공부를 위한 유익한 단상들

 "나 자신이 보고, 나 자신이 묵상하며, 나 자신이 씨름하기 위해 자신의 눈으로 성경을 보라. 그것이 남의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보다 낫다.". <마틴 루터>

 "성경을 어떤 교리나 주장에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되며, 또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성경은 다만 성경 그대로이어야 한다. 성경이 나를 사용할지언정 성경이 나의 입장이나 주장을 변호해 주기를 원해서도 안되며, 더욱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해석자는 성경자신이어야 하며 거기에 가감, 혹은 각색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교파의 교리들이 신앙생활에 문제가 되는 것은 교리가 처음에는 성경에서 나왔지만(어느 교리나 다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성경이 그 교리를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교리가 각각 다르다는 것은 성경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그 교리를 조직한 "사람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로교 교리는 "칼빈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칼빈주의"는 칼빈이 성경을 보는 시각이었다. 감리교가 있고 성결교가 있는 것은 그들의 교리를 만든 사람들의 성경 보는 시각이 칼빈과 다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를 알기 전에 성경을 알아야 마땅하다. 성경을 아는 자는 칼빈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지만 성경을 모르고 칼빈주의만 알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닌 "칼빈 신봉자"가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교리를 조직하는 자는 성경을 알고 교리를 만들지만 그 뒤에 그 교리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성경을 '그 교리적 시각'에서만 이해할 뿐 성경 그 자체를 모르고 "성경적 성경"이 아닌 "교리적 성경"의 개념이 박혀 그 사람의 일생을 끌고 갈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사람은 교리를 배웠다는 것 자체가 큰 불행의 원인이 된다. 교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줄 수 있을는지 모르나 반면에 교리적 시각은 성경을 오해하게 하는 안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되겠다."

"성경이 모든 것의 절대기준이며, 삶과 신앙의 기초이고 교회 설립의 근거가 돈다. 즉 우리 삶에 절대 표준이 될 수 있는 최종권위는 오직 성경뿐이다.". <최종권위, 박만수, 도서출판안티오크>

 

 

"어떤 사람들은 재치 있게 말한다. 성경을 그처럼 강조할게 아니라 성경이면에 있는 그리스도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 소리는 언뜻 듣기엔 경건하고, 그럴 듯 해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터무니 없는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 교제의 진정한 유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서 발견하는 그대로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이 자기 최면이나 심리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직 성경이 있어서 그것으로 우리의 영적 체험을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되었으되' 이 말을 음미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경관을 갖지 않고서도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살아있는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동일한 것이니 마치 우리 입에서 나온 말이 우리의 일부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기록되었으되'하고 말씀하실 때 그는 성경을 자기자신과 그의 말씀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도널드 그레이 반 하우스>

 

"말씀과 행동은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든다. 만일 말씀뿐이고 행동이 같이 하지 않는다면 영적 소화불량에 걸릴 것이다. 한편으로, 행동뿐이고 말씀이 같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머지않아 모든 종류의 과실에 빠져 선을 행한다기 보다 오히려 해를 남기는 데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들이 먼저 말씀을 배우고 그 후에 행동하는 데에 나간다면 우리는 건전하고 유용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성경을 연구하는 일이 없이 열매를 맺었다는 그리스도인을 본 일이 없다. 성경을 무시하고도 하나님께 사용되기를 간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여지가 적으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을 사용하실 수가 없다. 우리들은 양날 선 검보다 예리한 말씀 그 자체를 가지지 아니하면 안 된다.". <D.L. Moody>

 

 

"이 책은(성경은) 당신을 죄로부터 멀리하도록 지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이 책으로부터 멀리 지킬 것이다.". <존 번연>

 

 

"No Bible, No Breakfast". <중국의 어느 한 그리스도인 >

 

 

clean Bible dirty mind,

 

성경책이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더럽고,

 

dirty bible clean mind

 

성경책이 더러운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이 끊어지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왜 살 수 없는가? 양식이기 때문이다.(요 6:27-57, 렘 15:16) 양식은 미리 먹어둘 수 있는 것도, 나중에 먹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날의 양식은 그 날 먹어야 하고 그 때의 식사는 그 때 해야 한다."내가 곧 생명의 빵이로다."(요 6:48)

 

 

"성경은 도덕의 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다. 그리스도는 도덕의 선생이 아니다. 인류의 구주이다. 이 사실은 몇 번이든 되풀이 해 말할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는 성경도 그리스도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찌무라 간조>

 

 

"그리스도는 성경의 열쇠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오직 성경만이 그 해답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 성경은 예수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계시는 독생하신 아드님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 1:18).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 후로는 너희가 그분을 알며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말씀드리되,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아는 것 이상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는 것 이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데오도르 H. 에프>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작자미상>

 

성경의 어느 곳을 보아도 주님(Lord)이 보이네.

그는 성경의 주제이며 그 책(The Book)의 중심이요, 심장일세.

그는 샤론의 장미요, 그는 아름다운 백합이니

성경의 어느 곳을 열든지 그 책(The Book)의 주님이 거기 계시네.

그는 그 책(The Book)의 첫머리에서 땅에 형체를 부여하셨고,

그는 안식의 방주로서 폭풍의 예봉을 이겨내며

사막의 불타는 떨기나무요 아론의 지팡이의 싹이니

성경의 어디를 보든지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 보이네.

모리아산의 수양, 땅에서 하늘로 이르는 사다리

창문에 매달린 붉은 줄, 그리고 높이 들린 놋뱀

모세가 두드린 반석,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진 목자

그 책(The Book)의 어디를 열든지

나의 주님의 얼굴이 보이네.

그는 여인의 후손이요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구세주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사람들의 냉소의 배척을 받으셨네.

그의 은혜와 아름다움의 겉옷을 당당한 아론이 입었네.

하지만 그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니 이는 그가 멜기세덱임일세.

영원한 영광의 주님

요한과 사도가 본 그 분일세

황금도시의 빛

흠과 티가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

한밤중에 오시는 신랑

처녀들이 그를 기다린다네

성경 어디를 열든지

거기에 나의 주님이 보이네

 

 

"성경 연구에 필요한 일이 네가지 있는데 그것은 첫째 진리를 받아들일 일이요, 둘째는 그 가르침에 따를 일, 셋째는 기억해 둘 일, 넷째는 그것을 전할 일이다."

 

 

"성경을 5대 구분을 통해 연구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1. 역사, 2. 예언, 3. 모형, 4. 기적, 5. 비유 등으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성경을 연구하는데 두 가지 정반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망원경을 가지고 연구하는, 즉 어떤 책 전체를 취급하여 그 가운데 흐르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현미경적 방법, 즉 한 구절을 취급하여 그것을 분석 해부하는 방법이다. 만일 창세기를 취급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전 성경의 못자리임을 알 것이다. 그것은 생명, 죽음, 부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또 성경에 다른 부분에 기록되어있는 모든 일을 포함한다.". <성경연구방법, D.L.Moody, 생명의 말씀사>

 

 

"나의 친구여, 당신은 생선을 먹듯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생선을 먹는가? 뼈가 나오면 나는 생선 접시를 집어들고 단지 뼈가 나왔다고해서 이것을 던져 버리는가?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뼈를 골라내어 접시 가장자리에 발라놓고 계속 생선을 먹어간다. 그 다음, 다른 뼈가 또 나오면 이것도 옆에다 치워두고 계속 생선을 먹는다. 나는 뼈가 나온다고 해서 생선을 던져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성경구절과 마주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치워버릴 작정인가? 물론 그렇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내버려 두고 말씀을 계속 읽어나가라. 당분간 그것을 제쳐놓고 당신은 연구를 계속하라. 생선먹기를 계속하라. 말씀읽기를 계속하라.". <오스왈드J 스미스>

 

 

"구약에는 신약이 숨겨져 있고 신약에는 구약이 열려져 있다". <아다 룻 하버슨>

 

 

"구약 성경은 마치 영화의 화면(영상)과 같고, 신약 성경은 마치 그 화면에 있는 자막과 같다. 자막없는 화면만 보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화면없이 자막만 읽으면 또 그 자막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거대하고 깊은지 상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우리의 약점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우리에게 화면으로도 만들어 주고 자막으로도 명백히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박영선 목사>

 

-출처: www.antioch.co.kr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성경읽기 

 

저는 수많은 다른 젊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성경보다 먼저 신앙 서적을 찾는 잘못에 빠졌습니다. 이전처럼 정신을 살찌운답시고 불어나 독어로 된 소설들을 더 이상 읽지는 않았지만, 성경책은 서재의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책자, 선교 보고서, 설교집, 경건한 위인들의 전기를 읽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종류의 책들은 다른 문학 서적들보다는 유익했습니다. 제가 그러한 책들을 탐닉하지 않고, 그러한 책들을 통해 성경 말씀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더라면, 정말로 큰 유익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열 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학교에서 가끔씩 성경을 읽은 적은 있었습니다만, 그 후로 하나님의 책은 완전히 제 손을 떠났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한 장도 채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경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그 말씀을 이해하는데 느끼는 어려움, 읽는데 따르는 지루함 등으로 성경 읽기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사실 기도 가운데 성경을 읽으면 많은 지식뿐 아니라 기쁨도 얻게 되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은 후 처음 4년 동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신앙 서적을 주로 읽었습니다. 그 결과 지식에 있어서나 은혜에 있어서 어린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참 지식은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거의 4년 동안 믿음의 기초에 대해서조차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무지함 가운데 지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眞理)만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우리를 해逆쳐�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요 8:31-32). 말씀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믿음의 위인들의 삶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또 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1829년 8월에 들어 비로소 말씀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제 삶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멀긴 했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성경보다 다른 책들을 더 좋아하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쓴 책을 더 즐겨 읽는 사람이 있다면, 저의 예를 통해 경고를 받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는 다른 책들에 더 매료되어 왔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성경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불필요하게 또 다른 책 한 권을 더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제 실수를 통해 많은 형제자매들이 경고를 받고, 성경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게 되리라는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이 글을 씁니다.

 

누가 제게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가장 효과적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1.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으며, 따라서 말씀을 읽기 전(前)과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와 더불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뛰어난 선생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성령님께서 언제나 즉각적으로 가르쳐 주시지는 않기 때문에, 어떤 구절에 대해서는 그 뜻을 보여 주시기를 거듭 간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 가운데 인내로써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뜻을 가르쳐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3. 구약과 신약을 매일 일정량 읽어서 성경 전체를 체계적으로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각 성경기록의 연관 관계를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어떤 부분만을 뽑아서 읽는다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육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여러 가지 다양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도 이 같은 다양성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 여기저기서 어떤 부분만을 발췌한다는 것은 곧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더 낫다든가, 심지어 성경에 보여 진 어떤 진리는 유익하지 못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넷째, 이렇게 체계적으로 성경 전체를 통독해 나감으로써 특별히 좋아하는 어떤 견해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성경 전체의 개념을 균형있게 파악하게 됨으로써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다섯째, 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뜻들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성경 전체를 한 번도 통독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날마다 빠뜨리지 않고 하루 몇 장씩 읽으면 일 년에 성경 전체를 한 번 읽을 수 있습니다.

 

4. 우리가 읽은 말씀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읽은 구절 가운데 몇 구절만 묵상하거나, 시간이 허락하면 읽은 내용 전체에 대해서 하루 종일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성경의 한 책이나, 서신서, 복음서의 한 부분을 날마다 규칙적으로 묵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이 쓴 주석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많은 지식이나 생각을 머리에 넣어 줍니다. 그러나 기도와 묵상을 통해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때, 우리의 마음이 채워지게 됩니다. 전자와 같은 지식은 일반적으로 쉽게 증발해 버리며, 다른 견해로 반박을 받는 경우가 흔하며, 막상 삶 가운데 옮기려고 할 때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지식은 통상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며,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줍니다. 이러한 지식은 반박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우리의 한 부분이 되며,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 네비게이토 출판사 발행 [조지 뮬러 : 믿음의 사람]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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