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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CSJ

영성의 상보성 원리

최종 수정일: 2018년 8월 6일

양자이론은 물질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를 원자가 아니라 장(field)과 에너지로 본다. 장은 위치에너지로 나타나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가깝다.[1] 하이젠베르크는 가장 근원적인 곳에서 만나는 세계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플라톤이 주장했던 물질의 관념들과 같다고 말한다. 빛이나 전자와 같은 양자가 입자성과 파동성을 함께 갖고 있는 것처럼 양자세계에서는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가 나누어질 수 없다. 이를 상보성의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라고 한다. 물질과 정신을 별개의 것으로 나누는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구별된다. 양자이론은 이원론적 사상을 거부하고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양자 세계에서 이 유기체는 물질적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혼이 있는 정신적인 것에 가깝다.

양자이론은 상보성 개념을 전제하기 때문에 대립적인 두 물리량은 상호보완하여 나타난다. 전자가 갖는 두 물리량 위치와 운동량은 상호보완적이다.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라는 주역의 음양이론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양자론적 세계관은 대립되는 관계를 연결하고 보완하는 화해자 즉 피스메이커 구실을 하게 된다. 즉 대립하는 물질, 개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신문기사를 쓰는 기자에게는 신속과 정확이 필요하다. 이 신속과 정확은 상보적이다. 신속하게 쓰려고 하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정확하게 쓰려고 하면 마감시간을 놓칠 수도 있다. 신속함과 정확함이 서로 보완되고 균형을 이루어 좋은 기사가 쓰여진다.[2] 신앙 속에서 개인적 구원과 사회적 구원도 상보성을 가지고 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비교 사역이 아니라 상호보완할 때 완성되는 구원사역이다. 믿음과 행위도 상보성이 나타난다. 바울이 강조하는 믿음의 구원이 있고 야고보가 강조하는 행위의 구원이 같이 있다. 말씀사역과 성령사역도 마찬가지로 상보성을 갖는다. 이와 같이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신앙의 특성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신앙을 이루는 두 속성이다. 양자이론의 세계관은 다른 두 속성을 화해시켜 갈등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로 볼 수 있도록 한다.

양자이론에서 전자의 위치는 운동량과 교환 가능하지 않는 상보성을 갖는다. 그래서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측정할 수 없고 확률분포에 의해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측정의 한계가 생기게 되는데 이를 하이델베르그는 불확정성 원리라고 했다. 이 세계는 개념이나 실험 자체에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 인간이 갖는 지식의 한계이면서 자연의 객관적 사실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설명되었던 과학주의, 환원주의를 거부한다. 원인을 알고 있으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탈피한다. 윤리에서 나타나는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 단순한 공식이 깨진다. 양자이론의 세계관에서 현상과 사건은 인과율을 따라 일어나지 않고 확률적으로 일어난다. 즉 원인과 결과에 매여 있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개방 상태에 놓이게 된다. 양자세계에서 결과 혹은 미래는 현재의 관찰자에 의해 정확하게 계산되거나 예측되지 않는다. 현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폐쇄적인 인과율이 양자론적 세계관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이와 같이 양자론적 세계관은 비결정론적 세계관을 보인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기계적으로 움직였던 세계를 이해했던 사고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방적인 정신적인 현상을 양자이론은 설명하고 있다.

육신과 영혼은 대조적이지만 한 인격으로 나타난다. 신자가 육신의 일을 강조하다 보면 외식하는 자가 되고 자칫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영혼의 일을 강조하다 보면 신비주의에 빠질 수 있다. 육신의 일과 영혼의 일이 상호보완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육신과 영혼이 합작 되어야 삶이 예배가 되고 교회가 예배 공동체가 되어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이루어진다. 육신과 영혼이 함께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비신자들을 전도하고 이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선교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이원론적 인간들이 양자이론적 영성으로 서로 화해하고 보완하여 한 유기체가 되어 예수님의 몸을 이루고 구원의 완성을 추구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갈 수 있다.

[1] 김균진, 양자물리학의 세계관의 생태신학적, 사회-정치적 의미, p166


[2] http://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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